3년 전에 있었던 조금은 특별했던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강철같은 심장과 한없이 차갑기만 했던 나의 이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한 남
자와의 추억이 지금 이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유달리 내 앞에서 수줍게 미소짓던 사람. 온통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더듬 말을 잇던 사람. 지극히 감성적이고 표정이 풍부했던 사람.
나는 이미 그때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단지 그때는 내가 인정하려하지 않았
을 뿐, 이미 나의 육체와 영혼은 그에게 흠뻑 빠져 들어갔던 것이다.
그로 인해 이유 없이 느껴지던 혼란스럽던 감정과 육체의 모든 반응은 내가 그
를 사랑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음을 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흐
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내 곁을 떠난 사람. 그리고 너무나 멀
리 와 버린 3년이란 시간.
사랑이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헛 똑똑이 신지수가 지금에 와서 할 수 있
는 거라곤 그와의 추억을 기억하며, 언제라도 나를 기다린다던 그의 말을 되새
기는 것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쭈삣거리며 내게
로 달려오던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감상에 빠질까 우울한 기분에 축 늘어질까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애
써 노력했었는데, 비 오는 날 그를 만난 후부터 비가 오면 자연스레 그를 생각
하게 되었다. 그가 항상 비 오는 날이면 나를 생각했듯이 말이다. 만약 지금 어
딘가에 있을 그가 [넌 비가 오면 무슨 생각을 하니?]하고 다시 물어 온다면 난
자신 있게 대답하리라.
[있지, 비가 오면 늘 네 생각을 해]
지금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소록-소록-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나는 서
랍 속 여인 조각상을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나의 동화는
이렇게 비 오는 날 시작하면 좋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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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가 올 2005년
새로운 소설을 들고 찾아 뵙겠습니다.
from. 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