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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 살짝 리뉴얼 했습니다. [6]
문.사 살짝 리뉴얼 했습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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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넌 비가 오면 무슨 생각을 하니? 8

     날짜 : 2004년 10월 25일 (월) 12:36:56 오후     조회 : 729      
그 날, 우리들은 곧 근처 커피 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가 오는 거리에 어색하
게 서 있기도 민망하고, 빗소리 때문에 대화하기에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의 기차 시간까지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이야기하자고 제안을 했었다. 나의
제안에 그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곤 그러자는 뜻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는 펜팔을 할 때와는 달리 말도 없고 무척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뜸 나를 보고 덥석 달려올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워질 정
도였다.
그는 커피 숍에 들어오고 나서도, 차 주문을 시키고 나서도, 그러고 몇 분이 흘
렀는데도, 한마디 말도 없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연신 안절부절하
며 창밖을 내다보던가, 아니면 자신의 모자를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런 그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동석이처럼 정신 없이 시끌벅
적한 녀석이었다면, 오히려 난 그를 대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 자
리에 나간 것을 몹시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조용하고 차분
한 분위기며 수줍게 볼을 붉히며 안절부절하는 모습은 내게 한없이 편하게 느
껴졌고, 진실 되게 보였다.
그렇듯 그는 자신의 표정이나 행동조차도 내게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떠했는가? 내 심장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춤을
추고 있었고, 내가 왜 이 자리에 나왔어야 했는지, 무엇을 알고자 했으며, 이 사
람을 왜 여기까지 데리고 들어왔는지, 그를 보며 느껴지는 이 정리되지 않는 감
정은 또 무엇이며, 이런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
각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앞에서는 전혀 그런 내색을 않고
태연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행여나 복잡하고 혼란스런 내 마음이 그에게 드러
날까 봐 조바심내면서도 나는 그보다는 더 여유롭게, 더 냉정하게 감정을 억제
하고 가장하고 있었다. 그렇듯 나의 이성은 그에게 감정의 흔들림 없는 모습으
로 일관하고 있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약속대로 난 오늘 널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어. 넌 내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그 이야기를 말해 주지 않겠니?』


그를 향해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만지작거리던 모자를 탁자 위에 올
려놓고는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비..비가 오면 무..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다..답을 말해주기
로 했었지?』

『그래. 난 그 답변을 듣기 위해 널 만난 거잖아.』

『..여..여..역시나... 너...오늘 나온 이유가...그...그것 때문이었니? 다..단지
그것뿐이었니?』

『....??...』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머리가 핑 돌았다. 그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뾰루퉁해져선 애꿎은 커피 잔만 빙빙 돌리고 있었다.


『지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내가 듣기엔 너와 나 오늘의 만남에 다른 이유가
또 있어야 한다는 말로 들리는데,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을 좀 해 주겠
니?』


그는 난감한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뭔가 갈망하는 듯한 시선으로 한동안 나
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 속에 담겨져 있는 나의 차가운 모습. 한치의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그의 시선을 맞받아 보는 내 모습이 그의 눈동자 속에 단호히 자리하고 있었
다. 그는 그런 나의 시선에 기가 죽었는지 어쨌는지, 금새 얼굴이 새빨개져서
는 자신의 시선을 창 밖으로 급히 돌려버렸다.


『김지훈, 지금 난 내가 듣고 싶은 답을 하나도 듣지 못했어.』


나의 말에 그는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그래.』

『넌 여기 들어온 이후로 제대로 내게 말을 꺼내지도 못했어. 우리에게 주어
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잖아. 가급적이면 대화를 빨리 진행시켰으면 좋겠는데,
어려운 부탁인 거니?』

『아..아니야..』


그리곤 또다시 어색한 침묵. 정말 대책이 안 섰다. 나는 기분이 상해 미간을 잔
뜩 찌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
다. 그런 식으로 계속 있어봤자 내가 원하던 답은 앞으로도 듣지 못할 건 자명
했기 때문이었다.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바보같이. 대체 지훈이에게서 난 뭘 기대했던 거지?'


『지..지수야? 가..가..갑자기 왜?』


그가 몹시 놀란 모습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몰라서 묻니? 넌 내게 아무 할 말이 없는 것 같고, 나 역시 너와 할 이야기
가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려는 거야.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어.』


나의 이 말에 그는 온통 얼굴이 새빨개져서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 이게 아닌데. 정말 아닌데.'

나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내 입이 저주스러웠다. 좀더 부
드럽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건만, 그의 심장을 찔러대는 가시 돋친 말들이 술
술 흘러나오다니.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행동들에 나 역시 당황하지 않
을 수가 없었다.


『내..내..내가 바보 같아 보이겠지? 네 앞에서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쩔쩔
매기나 하고, 또 마..마...말도 더듬지.. 아..알아.. 알겠는데..이..이런 식으로 돌
아서지..말아 줘..오늘.. 널 ..마..만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어제는 잠도 이루
지 못하고 서..설쳤는데..』


나를 보는 그의 간절한 눈빛. 차가운 심장을 녹일 것 같은 그윽한 눈빛. 식은땀
을 삐질삐질 흘리면서까지 힘겹게 말을 하는 애절한 모습. 아! 그 순수한 모습
을 외면하고 돌아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나는 나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 그의 맑은 모습에 못 이겨,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
았다.


『너 아니? 넌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상하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라. 난 네가
여자들 앞에서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그런 유들유들한 성격을 지닌 사람
인줄만 알았거든. 이렇게 숫기가 없을 거라곤 상상도 안 했어.』


그가 수줍은 미소로 내게 살짝 웃어 보였다.


『너..너는..내가 상상하던 모습 그..이..이상이야.』


난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차갑고 경직되어 있던 모습을 풀고, 여느 다른 친구들
을 대할 때의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선 말했다.


『그랬니? 어쨌든 그리 봐 주니 고맙구나. 그런데 내가 좀 성격이 못 됐지? 원
래는 나 사람들하고 금새 친해지고 농담도 잘하고 그러는데, 이상하게 오늘 네
앞에서는 쌀쌀맞고 차갑게만 대하게 되는 거 있지? 왜 그러는지 나도 잘 모르
겠어. 아마 네가 날 어려워하는 것도 내가 너무 너에게 딱딱하게 대해서 일거
야.』

『나..나도..워.. 원래.. 이렇게 말도 더듬지 않고 잘하는데 이..이상하게 네 앞
에서는..지..지금과 같은 모..모습을 보이게 돼. 나도 내가..너..너를 만나고 이
렇게..되...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그는 잔뜩 긴장한 모습에 경직된 태도로 시종 진땀을 빼면서 말을 이었다. 나
는 아무 말 없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 내 모습에 용
기를 얻었는지 그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그..그리고..너..너는 생각했던 것보다..훠..훨씬 더..예..예뻐!』


오!! 이런!! 다시 안정을 되찾았던 나의 심장이 급격히 뛰어대기 시작했다. 나
는 갑자기 화끈거리는 열기에 숨이 턱하니 막힐 것만 같았다. 어쩌다..어쩌다...
또 이렇게.. 대체 나는 왜 그의 말에 이토록 정신 없이 낯선 감정의 물길 속으
로 빠져 들어가는 것일까? 다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그런 말 그렇게 쉽게 꺼내는 거 아니야. 다시는 그런 식의 말은 하지
마.』

『..어?..으...응..』


그는 잠시 슬픈 빛이 감도는 눈길을 내게 보내고는 마지못해 힘없이 대답했
다. 그러다가 그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내 모습과 창 밖 풍광을 번갈아 보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짐짓 모른 척 하곤 곧 화제를 돌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들
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시간 가량을 그렇게 함께 있었다. 주로 이야기는 내 쪽에서 했고, 그
는 간간이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듣기만 했다. 그렇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전
혀 어색해하거나 지루해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나는 그에게서 그
러한 상황에 안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말없는 상대를 앞에 두고
시종 재잘거려 보기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 하나 하나에 세심하게 표정이 변하는 그의 모습을 흥미 있게
지켜보았다. 정말이지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엔 진지함이 깊게 배여 있었
다. 어쩜 그는 그렇게 다른 이의 이야기에도 감정이입을 잘 느끼는 걸까? 나는
그가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새삼 깨닫고 있었다.

...9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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