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는 척, 관심 있는 척, 마음 넓은 척! 척, 척, 척! 아저씬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인간인줄 알죠? 모든 진심이란 진심은 자신의 마음 안에 넘쳐나고
있다고 생각하죠? 착각하지 마세요! 아저씨의 그러한 생각, 모습 모두 진짜가
아니에요!"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자는 그녀의 말에 그
어떤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자신의 가슴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녀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있는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싶었다. 역시나 눈치 빠른 그녀가
남자의 마음을 알아채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포옹하듯 남자에
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왼쪽 귀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나야 워낙에 저런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하니까 괜찮지만 아저씨는 많이 낯설
거예요. 시선을 끄는 나 같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치르는 일이라 생각하시면
위안이 될 거예요. 처음엔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아저씨가 나에
게 보인 관심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이상 아저씨를 그냥은 보내기 싫
었거든요. 엄연히 아저씨는 진심을 가장하고 내 자유를 침해했고, 내 삶의 작
은 공간 안으로 들어섰으며, 순간이었지만 내 진심도 유린 하셨으니 그에 대한
대가는 치르셔야지 않겠어요? 후후. 봐요, 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조금은 특이한 모습의 나와 함께 있는 아저씨를 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까요? 후후."
그녀는 말을 다 마치고 남자의 귀에서 입을 떼었다. 그제야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남자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자신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온통 빗물에 흠뻑 젖은 젊은 여자가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 한복판에서 중
년의 남자와 포옹하듯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들의 시선을 어찌 끌어들이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녀와 남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에는 역시나 흥미로운 볼거리가 생겨서
즐겁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어리벙벙해진 남자가 그녀에
게 잠깐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눈에 비친 그녀는, 그녀가 말했던 그대로 사람들의 시선 따윈 상관없다
는 듯 달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속닥속닥", "웅성웅성"
우산 속, 그녀와 자신의 모습을 두고 소곤대는 사람들의 시선에, 남자는 부끄
러움과 창피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런 남자와는 달리 그녀는 주위의 사람
들을 휘익 둘러보고는 씽긋하고 뜻모를 냉소를 지어 보였다.
'대체 내가 이 여자에게 무엇을 크게 잘못했단 말인가! 내게 고맙다는 말은커
녕 이런 몹쓸 상황을 겪게 하다니!'
남자는 자신을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만들어 놓은 그녀가 원망스
러웠다. 또 이런 상황을 안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스레 냉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다.
"속닥속닥", "웅성웅성"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자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을 받
아 내는 것이, 이상한 그녀를 만난 것보다도 더 당혹스럽고 신경이 쓰였다.
'모두가 우산도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던 정신나간 이 여자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남자는 더욱 더 그녀가 밉살스러워 보였다. 귀까지 빨
개질 정도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남자의 눈에서 순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일었다. 그리고 윗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야, 이 미친년아!! 기껏 비 맞고 다니는 게 불쌍해서 예쁘게 봐줄랬더니 별 짓
거리를 다하네!! 나 원 재수가 없으려니까!!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고마워 할 줄
도 알아야지. 어디서 요상한 궤변을 늘어놓고 지랄이야, 지랄이!! 에이! 오늘 일
진이 사납다했더니 별 미친년 하나 때문에 괜한 시간만 낭비했네!! 에이- 재수
없어!! 퉤!!"
남자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우산을 함께 쓰고 있는 그녀를 우산 밖으로 획! 밀
쳐내며 소리쳤다.
인형처럼 길바닥에 널브러진 그녀가 울 듯 말 듯한 표정으로 180도 돌변한 남
자의 싸늘한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그녀는 한동안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런 그녀위로 차가운 빗줄기가 내리 퍼부었다. 한편, 남자는 자
신의 돌발적인 행동에 넋이 나간 듯 그녀를 밀쳤던 손과 처연하게 널브러져 있
는 그녀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하였다.
"어머, 무슨 일이래!!"
"세상에! 어쩜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여자를 밀쳐낼 수가 있지?"
"어떻게! 저 여자 너무 불쌍하다."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
주위로 다가와 "웅성웅성" 자기들끼리 계속 속닥거렸다.
"보아하니 둘이 친한 사이인 것 같은데 싸우기라도 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연약한 여자를 밀쳐낼 수가 있니?"
"아니에요. 저 여자가 정신이 좀 이상한 여자래요. 지나가는 저 아저씨 우산에
불쑥 들어가서 요상한 행동으로 유혹을 했다나, 어쨌다나 그랬다네요."
"보기엔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요물인가 보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저 아저씨 점잖게 생겨 가지고 어쩜 저렇게 잔인할 수
가 있을까? 어머, 어머! 설마 원조 교제 뭐 그런 거 아냐?"
남자와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한 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무방비상태로 노출이 되어버린 남자는 흠흠! 헛기침을 몇 번하고
는 급히 돌아섰다. 그리곤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사람들이 볼 새라 꽁지가 빠
지게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