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재래시장을 좋아해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할머니들이 손수 준비해 오신
푸성귀를 장바구니 가득 담으면 인정도 함께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닳은 손톱, 까맣고 주름진 손길을 보면 우뚝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것은 내 어머니의 모습이고 앞으로의 제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한참 시장 안을 돌다 어느 아주머니의 당근 사라는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아직 채 마르지 않은 흙 묻은 당근이 보였습니다.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
그때 봉지를 건네며 당근 장사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하셨습니다.
"혹시, 우리 인애 선생님 아니세요?" '선생님'소리에 내 눈이 반짝 빛났습니다.
"아! 인애 어머니." 한눈에 알아본,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인애는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제가 잠시 머물렀던 산골 작은 학교에서 만난 아이입니다.
인애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인애 어머니와 안부를 주고받던 나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11년, 만나지 못한 긴 세월만큼이나 추억도 빛을 바랜 듯한데,
일곱 살이었던 인애가 아직 저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열여덟 살인 지금까지 인애는 날마다 제 얼굴만
동그랗게 동그랗게 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눈물을 훔치는 사이 봉지에 더 많은 당근이 담기고, 저는 받지 않으려는 당근 값에
얼마를 더 보태고 도망치듯 빠져 나오는데 눈앞이 또 흐려졌습니다.
눈물인지, 아픔인지...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인애가 좋아하는 도화지와
예쁜 크레파스를 들고 찾아가야겠습니다.
인애가 저를 몰라본다 해도 말입니다.
염미영 님/ 경남 함양군 교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