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만한 것에 대하여 * / 안재동
봄날의 온화하고 따사로운 햇살,
푸른 하늘에 뜬 태양이 만만하니?
하지만, 태양도 성난 얼굴로
일단 작열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숨으려 애써도 소용없을걸
졸리도록 산들산들 불어대는
산들바람이 만만하니?
하지만, 바람도 일단 성내기 시작하면
그 도도함과 괴력에 맞설 존재는
세상에 그 누구도 없을걸
하늘에서 송이송이 송송송
보드랍게 내리는 눈이 만만하니?
하지만, 눈송이들도 성난 몸짓으로
일단 뭉치기 시작하면
세상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쿡 눌러버리고도 남을걸
가랑가랑 간지럽게 내리는
가랑비가 만만하니?
하지만, 가랑비도 일단 성이 나면
굵고 길게 변하기 시작하고
그 앞에선 지상의 그 어떤 것도
멋대로 얼굴 내밀긴 어려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