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 * / 안재동
감자는 밭에서 익고
탕솥이나 찜솥에서 또 한 번
익는다.
밭에서든 솥에서든
잘 익은 감자는
뭇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밭에서
제대로 자라지 않거나
채 익기도 전에
썩어버리는 감자만큼
농부에겐 볼썽사나운 것이 없다.
밭에서 잘 익고
솥에서도 푹 익은 감자보다
더 멋 나는 감잔 없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즈음
세상을 어서 보고 싶기라도 한 듯
밭이랑을 부지런히 파헤치고
솟아오른 감자잎들 사이로
눈송이처럼 하이얗게 핀
감자꽃을 바라보면, 어딜 가서
감자다운 감자 한 번 정말
배불리 먹고 싶어질 때 있다.
잎마름병이며 가뭄이며
갖은 고비 다 이겨내고
불사조처럼 살아남아
빛깔 좋고 탱글탱글한 모습으로
식탁에서 날 뜨겁게 반겨줄
감자다운 감자가 때론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