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주머니
작년 7월 우리 동네로
몸이 안 좋아져서 공군 소령으로 은퇴한
아미아라는 미국인 가족이 이사왔습니다.
마침 그녀의 딸 노바와 찬휘는 동갑인지라
놀이터에서 종종 만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어에 관심을 갖는 아미아에게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카드로 만들어서 읽기와 쓰기부터
목요일 오전 2시간씩
아무 것도 침범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지요.
노바의 한국유치원 선생님의 전화, 관리사무소 방송 등
귀찮아하지 않고 사전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도와주었습니다.
5월 스승의 날 공부하러 온 아미아는
내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며 오후에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우리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악세서리일까
예쁜 신발일까
작은 욕심 큰 욕심을 부려가며 설렜습니다.
탐나는 부라우스를 입고 나타난 아미아의 손에는 달랑 빨간 봉투 한 장.
아! 상품권을 주려나?
어서 열어보라는 그녀의 독촉에 상품권 액수를 굴리며... ...
여배우처럼 치장을 한 아미아
별에서 온 요정처럼 웃고 있는 노바
불교신자임을 증명하듯 인자한 표정의 로이
단란한 그들의 가족사진이었습니다.
“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대전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
뒷면에 필기체로 써 있는 감사의 글
아주 훌륭한 선물을 건네고 뿌듯해하는 그녀와는 달리
혼자 독장수셈을 헤고 있었던 나는
무슨 말을, 어떤 표정을
대뇌와 소뇌가 서로 역할을 미루는 사이
“너희 가족의 행복함이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마음과는 다른 한 문장으로 우물쭈물 답했습니다.
이어 6월 생일선물을 한 아름 받고서야 그날의 아쉬움이 가라앉았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섬김이라는 봉사라는 말의 사전적의미를 담기에는
아직 자라지 않은 내 마음주머니가 너무 작음을.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화두가 된 봉사라는 말.
맥문동의 다글다글한 보라색과
옥잠화의 종소리같은 보라색이 키재기를 끝내는 8월 끝무렵.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은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봉사의 마음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것.
가을의 본디이름 9월
그대여
우리 함께 마음주머니를 들여다볼거나.
독장수셈; 실현가능성이 없는 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