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긴 어디에요...?"
" 병원이야. 너와 봄이가 간 밤에 사라져 버려 온 동네 사람들이 찾아 돌아다니
다가 밤나무 아래에서 너희들을 발견했단다. 참말로 다행이야. 이 할미가
얼마나 걱정 했는지 알어, 인석아."
나는 갑자기 시무룩해졌습니다. 어젯밤 일은 역시 꿈이엇나 하고요.
" 그래 맞아! 할머니, 내 연 못봤어요? 봄이 연도 있었는데. 기린 모양의 연
말이에요!"
" 글쎄..? 그런것은 없었는데.. 왜 그러냐?"
그럼 어제 연을 찾았던 것도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야?
역시...나는 꿈속을 헤매다 온 게 틀림없어요. 지금쯤 연을 찾아봤자
분명히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거나 찢겨져 없어졌을 겁니다.
나는 너무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나왔어요.
그 꿈을 깨버린게 너무나도 아쉽고 그리워서 눈물이 흘렀어요.
나는 배갯속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할머니에게조차 들리지 않게 흐느껴 울었어요. 그런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두손엔 내가 엄마에게 전해주려고 편지도 같이 썼던 하얀 연과 봄이의 기린 연
이 들려져 있었어요. 처음보는 엄마의 얼굴이지만 나는 알수가 있었답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에요.
나는 엄마에게 달려 갓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저 아무말도 않고 미소만
지은채 자꾸 나한체서 멀어져 갑니다. 나는 허공만 휘저으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나홀로 남겨집니다.
역시 난 혼자였던 거예요. 할머니도...봄이도...동네아니들마저도 없는..
●
" 철아? 철이야!"
나를 애타게 부르는 꿈속에서 그리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 철아! 정신이 드니?"
나는 절대로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을 조금 떠봤어요.
" 철아!!"
웬 아주머니가 날 안으셨습니다. 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말이에요.
" 철아! 미안해...엄마가 널 너무 기다리게 했어..."
이렇듯 내가 꾸는 꿈은 너무나도 현실적입니다. 그러다가도 내가 손을 내밀
기라도 하면 닿을듯하다가 이내 사라져버리기 일쑤이죠. 그래서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어요. 대꾸하면 할수록 사라져만 가는 꿈이 허탈해지기
때문이었지요.
내가 다시 눈을 감으려자 그 목소리는 더 나를 불러댔어요.
나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죽으면 안돼, 철아! 엄마가 이렇게 건강하게 철이 옆으로 돌아왔는데 철이가
떠나면 엄마도 더 이상 살지 못할거야!"
엄마가 돌아왔대요. 엄마가 이토록 나를 찾는데...나는 도저히 눈을 감을수가
없었어요. 꿈이라도 좋으니까 가려던 길을 멈추어 나는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엄마는 도망가지 않았어요. 더이상 악몽이 아니었던 거예요!!
" ...엄...마.."
삐- 삐- 삐-
심장박동수가 제 소리를 찾아 움직였습니다.
" 철아!!"
꿈속의 그 아주머니였어요.
" 철아...엄마야, 제발 눈좀 떠보렴!"
따뜻한 촉감이 전해져 옵니다. 나는 있는 힘껏 눈을 떴어요.
눈 앞엔 엄마가 계셨어요.
" 엄마...계속 내 옆에 있었어?"
엄마는 내 얼굴을 보더니 나를 안고 엉 엉 우셨어요.
" 나...더 이상 여기에서 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영원히 안 깨려고
엄마의 목소리도 무시한 채 자려고 했는데...그랬는데..."
" 늦어서 미안하다, 철아..."
" 엄마가 날 끝까지 부르지 않았음 난 가려고 했어요...하지만 난 다시 발을
돌려 엄마한테 뛰어갔어요. 난 또 멀어져 갈까봐 두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 잘했다. 철아...엄만 절대로 절대로 철이를 두고 어딜 가거나 하진 않아."
" 엄마....울지마..."
나는 엄마의 빰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드렸어요. 참말로 고운 뺨과 예쁜 눈이었어요.
" 엄마 우는거 싫어...나는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그러니까 울지마..."
" 철아.....철이야..."
" 내가 엄마 아픈것도 다 아파줄거야. 다신 아프게 하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아프지도 마..."
" 그래...엄마 아프지 않을거야. 울지도 않을게.."
나는 엄마를 꼬옥 안아드렸답니다.
그리고 등뒤로는 엄마가 가져오신 내 하얀연과 봄이의 기린연이 놓여져 있었어요.
●뒷 이야기 1
나는 도시로 이사와서 첫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난 시골에서의 기억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엇지요. 이번 크리스마스는 봄이랑 나랑 엄마랑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세월이 지난 봄이의 모습의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가 않아요.
드디어 오늘은 봄이가 오는 날입니다. 나는 혼자서 역으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차장 아저씨의 벨소리가 들려옵니다.
기차소리가 멀리서 칙칙폭폭하고 들려옵니다.
나는 창가를 기웃거리며 기차가 거의 도착할때쯤엔 홈에 나가 봄이를 기다렸습니다.
내리는 사람들은 전부 머리에 짐을 이고 나오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셨습니다.
나는 혹시나 하고 생각했지요. 설마 할머니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고요.
한참을 찾았지만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정말 할머니가 되어 버린 걸까요?
기차가 몇 명의 사람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나는 혹시 내리는 곳을 몰라 못
내린게 아닐까 하고 유리창안을 기웃거렸어요. 점점 기차는 역을 떠나 저 멀리
사라져버렸어요. 나는 시무룩해졌지요. 하지만 그때 누군가를 부르는 예쁜
목소리가 들렸어요.
" 철이야!"
나는 멈춰섰습니다. 전혀 봄이라고 생각 못한 목소리였기 때문이에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저 쪽 건너편에서 남색치마를 입은 긴 머리의 소녀가
나에게 손을 흔들지 뭐예요. 나는 멍하니 바라볼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더니 그 소녀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보이는 것이엇습니다.
" 앗...저건 봄이의?"
봄이와의 추억을 잊을 수 없는 '기린'이였어요!
" 바보야! 뭘 멍청하게 서 있는거야?"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나와 봄이 사이로 첫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웃었습니다.
지난날을 되돌리기라도 하듯이 웃었어요.
●뒷 이야기 2
창가로 보이는 하늘엔 갖가지 연들이 날아 다니고 있습니다. 서로 뽐내기라도
하는지, 제 세상을 찾았다는 듯이 하늘을 누비고 다니네요.
나도 잠시 손을 멈추고 책상 위에 놓여있는 내 추억을 바라다 보았어요.
내 추억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조용히 앉아있었어요.
나는 가만히 손을 내밀어 먼지를 툭툭 털어 냈습니다.
아무것도 칠하지않은 빛 바랜 창호지의 보잘것 없는 연이지만 나에겐
소중한 거랍니다. 어쩌면 지금도 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나의 연은 오늘도 가끔씩....아주 가끔씩 눈을 감아 회상에 젖어봅니다.
내 연도 아름다웠던 그 시절들을 기억하고 있겠지요?
언덕 위의 고슴도치 밤나무도....
우리를 실어다 준 바람도...
불을 밝혀준 개똥벌레들도...
세상이 그토록 이나 아름답다는 걸 가르쳐준 달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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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by Kimjain 2002. 11. 10
이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것들에게 바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