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비어 있다
道虛...
1. 길에 대한 명상
누구나 선 자리가 있다.
그 선자리가 길이다.
누구나 걷고 있다.
그 걷고 있는 곳이 길이었다...
처음에는 길을 몰랐다.
길 대신에 서 있는 내가 먼저 였다.
나와 길의 관계보다는 엉뚱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이 문제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길이 있다고들 했고, 그런가 싶어 나를 조금 벗어나게 되었다.
이른바 나이와 경험의 총체인 역사에 의해서...
정말 길이 있었다.
정의할 수도 없고, 의문할 수도 없는 바탕으로...
혹자는 생이라고도 하고, 목적이라고도, 의미라고도 하는 그것이...
그러나 나는 이런 명명이 거북스럽다.
걷고 있는 행위와 행위의 중심으로서의 길과 걷고 있는 내 자신이 중요하다.
길에 대한 명상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2. 비어 있음.
채우기에 바쁘다.
빈 자리를 남기기가 두렵다.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채우기 위해서만 노력한다.
소유는 이런 채움의 결과며 욕망은 채움의 과정, 물질은 채움의 표상이고, 정신은 채움의 자랑으로 전락한다.
먼저 나를 채우고, 너를 채우고, 우리를 채우고, 그들을 채우기 위해서 관계가 지어진다. 여백이 남는 관계란 없다. 여백은 관계의 적이다.
그런데,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비어 있어야 한다.
충분히 비어져 있어야, 채울 수가 있다.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라도 비움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드러내야 하고, 먼저 상처 입어야 하고, 먼저 아파해야 했다.
고통스럽지만 이 존재의 사막과 존재함의 사막을 걸어야 했다.
3. 사막... 길....
사막으로 들어섰을 때, 비로소 알았다.
언제나 사막이었다는 것을.
사막을 결론 짓고, 들어섰다는 생각한 그 순간 조차도 이미 사막이었다.
인식하지 못했을 뿐, 느끼지 못했을 뿐 언제나 사막이었다.
사막에서는 걷지 않을 수 없다.
정지는 경건한 죽음이 되지 못하고, 망각일 뿐이다.
걸었다. 끊임없이.
사막을 다시 생각했고, 수없는 질문과 대답으로 자아에게 채찍질 했다.
길을 원망하고, 길을 반성하고, 길에게 애원하고...
반복과 반복의 계속이었다.
목이 말랐다.
얼굴이 탔고, 가슴이 탔고, 발이 부르텄다.
이름을 버려야 했고, 나를 버려야 했다.
한낮의 찌는 더위와 새벽의 추위를 견뎌내야 했다.
그렇게 사막을 살았다.
4. 길은 비어있다...
사막에서, 설명을 버려야 했다.
존재는 설명이 아니었다.
자아는 언어로 이해시킬 수 없다. 그동안의 헛된 노력들, 자아를 증명하기 위했던 사유와 경험은 지양되어야 했다.
그런데...
설명을 버리고, 존재를 버리고, 사막과 길과 자아와 걷는 행위만 남게 되었을 때....
길은 분명히 있었다.
사막을 벗어나는 길이 아니었다.
시작과 끝이 설정된 길이 아니라, 행위의 길이었다.
사막이 길이었다.
자아가 길이었다.
걷는 행위가 길이었다.
모두가 길이다.!
모두가 행위이다.!
그리고....
그 길은 채움의 비움이다.
비움의 비움이다.
비움 자체이다.
길은 비어있다.
5. 걷는다...
나는 걷는다....걷는다...
중요한 것은 걷는 행위이다.
길을 걷는 행위이다.
언어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6. 명명..
비로소 나는 내 이름을 찾았다.
최초로 이름을 지었다.
道虛......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