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노래하는 시 모음> 정연복의 '낙엽을 품다' 외 + 낙엽을 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로수길 걸어갑니다 방금 전까지 가지에 달려 있던 것들 이른봄부터 세 계절 눈부시게 살아 있던 목숨들 차가운 땅에 몸 누이는 걸 보며 가슴 한 구석이 찡합니다. 낙엽 하나 주워 두 손으로 포근히 감싸줍니다 슬픔의 강이 흐르는 내 가슴에 가만히 품어도 봅니다 낙엽의 몸에 온기가 돕니다 내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낙엽을 따뜻이 품어주었더니 낙엽도 나를 품어줍니다. + 함께 차가운 땅바닥에 수북히 쌓인 낙엽들 저마다 제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바람이 불면 찬바람이 불어오면 마치 무언(無言)의 약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조금씩 몸을 움직여 함께 무리 짓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이불이 되어 준다 꺼져 가는 생명의 마지막 온기를 함께 나눈다. + 낙엽 길을 걷다 낙엽이 누워 있는 길을 걸어가네 보도블록 사이사이 낙엽을 피해 발걸음 딛네 세상 살아가며 죄를 많이 짓는 내가 어찌 낙엽을 함부로 밟을 수 있으랴. 기어코 겨울 너머 연초록 새순으로 돋아 한철 푸른빛으로 온 세상 환히 밝히고 잠시 온몸 고운 단풍 물들었다가 이제는 떠나야 할 때 고분고분 목숨을 거두는 저 작은 한 잎 한 잎마다 성스러운 생의 자취를. + 낙엽이 지는데 가을은 벌써 깊어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가만가만 대지에 몸을 누이는데 내 맘속 고질병 교만함의 날개도 접혀야 하리. 세월은 많이 흘러 나의 생도 퍽 오래 되어 저만치 목숨의 끝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데 이제는 차츰차츰 마음 비워야 하리. + 낙엽과 나 내가 낙엽을 함부로 밟지 못하는 것은 남달리 착해서가 아니라 낙엽만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낙엽만도 못할 수 있냐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습니다 푸름에서 고운 단풍까지 착실히 한 생 이루고 가는 세상의 모든 낙엽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변함없이 그렇습니다. 내년에는? 글쎄요. + 낙엽의 유언 비록 한철의 짧은 내 생이었지만 햇빛과 달빛과 별빛 찬이슬과 비바람 맞으며 푸름에서 단풍까지 줄달음친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나 이제 아스라이 그대 곁을 떠나지만 내 온몸으로 발하던 푸름과 단풍의 빛 그대 가슴속에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슬픔과 고통에도 굴하지 않는 푸른 희망의 빛으로 살아 그대 영혼도 고운 단풍으로 물들어 가기를! + 낙엽 길을 걸으며 드리는 기도 낙엽 쌓인 길을 걸으며 인생의 의미를 묵상하게 하소서 세상에 한번 왔다 가는 인생 더없이 큰 축복이요 선물임을 느끼게 하소서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