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날마다
햇볕도 못 쬐었는데
어쩌면 토실토실
여물었을까?
(이종문·시인, 1955-)
+ 보름달
우리 고모 밤마실
길 어둡다고
저리도 환한 등롱을
누가 매달았나?
(임보·시인, 1940-)
+ 보름달
밤이 되면
보름달 하나가
천 개의 강물 위에
천 개의 달이 되어
떠 있다
나도 지금
너를 사랑하는 보름달이 되어
천 개의 강물 위에
천 개의 달이 되어
떠 있다
(정호승·시인, 1950-)
+ 덕유산 보름달
해가 뜨면 덕유산은
길들을 풀어놓았다가
해가 지면 제 품으로
도로 불러들이는 것인데
어떤 날은 어둑해지도록
집 생각 까맣게 잊어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길도 있는지
둥근 등 하나 내걸기도 한다
(강인호·시인)
+ 보름달
매우 고맙습니다
당신의 환한 얼굴 보여주시니
잔잔한 시냇물도 보이고
새로 돋은 연둣빛 풀잎도
사월 바람에 우우 물가로 몰려나옵니다
은은한 당신의 저고리 같은 마음으로
하얗게 물든 싸리꽃도 피겠습니다
달의 향내 흩뿌려진 꽃그늘 아래
아무래도 오늘밤
진달래술 한 잔마저 기울이면
저 높은 산 가슴 어디에
보름달 눈부시도록 솟아나겠습니다
(노창선·시인, 1954-)
+ 보름달
눈비에 젖는 일이 예사로운 날
하루의 악천후와
미끄러운 활주로를 거쳐
간, 신, 히,
격납고에 기체를 집어넣고
감사 기도를 짧게 하고
오늘 일을 끝낸 다음,
내 집으로 오르는 현관 계단에서
멈칫,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이 있어
나는 하늘을 잠시 보았다
아, 하늘에는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신다
(김종해·시인, 1941-)
+ 보름달
당신의 반달과
나의 반달이
합하여 보름달이 되었소.
달은 동산에 둥둥 떠올라
아이들의 창문을
환하게 비추오.
중천에 떠오른 달빛을 머금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 가오.
풀잎 끝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아이들의 눈동자도
초롱이 빛이 나오.
우리의 보름달이
구름 없는 중천에서
한없이 떠 있구려.
(박덕중·시인, 1942-)
+ 자장면 위에 뜬 단무지 보름달
모든 자장면 위에는
단무지 달이 뜬다
누구나
자장면 한 그릇의 행복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산다
소소한 행복이란
자장면 한 그릇 위에 뜬
단무지 보름달 같은 것이다
자장면 한 그릇보다 못한 시국에
단무지 반달이라도 박아 넣고 싶다.
(김병훈·시인)
+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떴다
어린 시절로 돌아온 듯 뒷동산에 올라
'동무들아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외쳤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밤이 흥청 깨어지도록 즐겁게 뛰놀던 기억의 자리에
낯선 무덤들이 여럿 웅크리고 있다
꽉 찬 보름달 텅 빈 뒷동산
내려오는 길목 늘어선 빈집들에는
어둠만 무겁게 도사리고 있을 뿐
아무도 살지 않았다
추억은 오래 전 뿔뿔이 쫓겨갔다
쫓겨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선태·시인,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