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죽었습니다, 그리운 형제 그리스도여.
하지만 당신이 대신해 죽은 사람들은 어디 있나요?
당신은 모든 죄인들의 괴로움 때문에 죽었습니다.
당신의 육체는 거룩한 빵이 되었습니다.
그 빵을 성직자와 신도들은 주일날 먹습니다만
굶주린 우리는 그들의 문에 동냥을 갑니다.
우리는 살찐 성직자가 배부른 뒤에
조금 뜯어주는 당신의 용서의 빵을 먹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고 돈을 벌며 싸우고 죽입니다.
그들 중 누구 하나 당신 때문에 행복해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가난한 자들은 당신의 길을 가오니
빈궁과 수치와 십자가를 향한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만찬에서 돌아와
성직자를 구운 고기와 다과에 초대합니다.
형제 그리스도여, 당신은 헛된 고민을 하셨습니다.
배부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구하는 것을 주십시오!
우리 굶주린 자는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여,
단지 당신을 사랑할 뿐입니다.
당신은 우리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니까요.
(헤르만 헤세·독일 시인, 1877-1962)
+ 가만히 두 손 모아
집 없이 추운 이여
예수님도 집이 없었습니다
노동에 지친 이여
예수님도 괴로운 노동자였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이여
예수님도 자기 땅에서 배척당했습니다
배신에 떠는 이여
예수님도 마지막 날 친구 하나 없었습니다
패배에 절망하는 이여
예수님도 영원한 현실 패배자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피투성이로 품은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자신의 패배와 죽음까지를 끌어안고
그것을 살아냄으로써 부활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당신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세상 힘없고 작은 사람 중의 하나인
당신 속에 하느님이 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박노해·시인, 1958-)
+ 흑인 예수
길바닥에서 자고 일어나
오가는 행인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저 떠돌이 노인의 쓸쓸하고 텅 빈 얼굴 위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뒤따라온 백인 경찰의 구둣발과 몽둥이에
무수히 짓이겨진 저 니그로 청년의 피멍 든 가슴속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죽어서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머금고 있는
총 맞은 마르틴 루터 킹 그의 두툼한 입술 위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붐비는 저녁 버스
잠든 엄마의 새까만 젖을 물고 두리번거리는
눈빛이 잘 익은 머루알 같은 아기의 맑은 눈 속에
그분은 와 계십니다
사람이 사람의 제 길을
갈 때까지 세상이 세상에서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나비가 나비만의 고운 하늘을 얻을 때까지
그분은 와 계십니다
(이동순·시인, 1950-)
+ 민중의 아버지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김흥겸·빈민운동가, 1961-1997)
+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 저의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저의 외침은
개인과 개인,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전쟁과 폭력에 희생된 모두의 외침입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저의 기도는
무기와 전쟁에 신조를 둔 사람들에게
고통받고 고통받을 모든 아이들의 기도입니다.
모든 이의 마음에
평화의 지혜와 정의의 힘을 심고자
당신께 청하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 제 목소리를 들어주시고
통찰력과 힘을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증오에는 사랑으로,
불의에는 완전한 헌신으로,
정의와 이웃의 필요에는 나눔으로,
전쟁에는 평화로 대응하게 하소서.
(요한 바오로 2세·교황, 1920-2005)
+ 깨진 항아리가 되지 않게
오 주님,
저희가 물을 담아두지 못하는
깨진 항아리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현세의 좋은 것들을 즐기느라 눈멀지 않게 하시고,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이 바닥나고
벌거벗은 몸을 가릴 옷도
가족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살아갈 집도 없는
무수한 우리 형제들과
가난한 이들,
병자들과 고아들의 외침을
저희 마음이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요한 23세·교황, 1881~1963)
+ 부활하는 삶
오늘도 그리스도는
환영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
배고프고 헐벗고 집 없는 사람들 사이에 계십니다.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서
무익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에게 시간을 내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실하다면
당신이나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보답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찾아내어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불친절한 증오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는 것보다
실수하더라도 친절과 동정심의 사람이 되려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일하고
지나가 버리는 일꾼입니다.
(마더 테레사·수녀, 1910-1997)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천국에서 보낸 편지
사랑하고 사랑하는 신부님, 수녀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베푼 보잘것없는 사랑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선택된 자로 살아온 제가 죽은 후에도
이렇듯 많은 분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니
나는 행복에 겨운 사람입니다.
감사하며 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생전에 하지 못한
마지막 부탁이 하나 있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불교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을 쳐다본다."
달은 하느님이시고
저는 손가락입니다.
제가 그나마 그런 대로 욕 많이 안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의 덕분입니다.
성직자로 높은 지위에까지 오른 것도.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다 그분의 덕입니다.
속으론 겁이 나면서도
권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부자들과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는 유혹이 많았지만
노숙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화가 나 울화가 치밀 때
잘 참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의 덕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유머로 넘긴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나중에 내가 보고도 약간은 놀란 내가 쓴 글 솜씨도
사실은 다 그분의 솜씨였습니다.
내가 한 여러 말들
사실은 2천년 전 그분이 다 하신 말씀들입니다.
그분의 덕이 아닌
내 능력과
내 솜씨만으로 한 일들도 많습니다.
빈민촌에서 자고 가시라고 그렇게 붙드는 분들에게
적당히 핑계 대고 떠났지만
사실은 화장실이 불편할 것 같아 피한 것이었습니다.
늘 신자들과 국민들만을 생각했어야 했지만
때로는 어머니 생각에 빠져
많이 소홀히 한 적도 있습니다.
병상에서 너무 아파
신자들에게는 고통 중에도 기도하라고 했지만
정작 나도 기도를 잊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훨씬 못한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이제
저를 기억하지 마시고
잊어 주십시오.
대신
저를 이끄신 그분
죽음도 없고, 끝도 없으신 그분을 쳐다보십시오.
그 분만이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실 제가 한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그분을 쳐다보십시오.
천국에서 김수환 스테파노
(여기서는 더 이상 추기경이 아닙니다)
(김수환 스테파노·추기경, 1922-2009)
-
+ 프란치스코 교황께
예수는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었습니다
한결같이 그들 편에 서서
세상의 구조악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끔찍한 십자가 처형을 당했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부활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예수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힘없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거짓 복음을 팔아 부를 쌓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욕을 먹어도 싼
부끄럽고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으로
예수의 본을 보이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당신의 낮아지는 모습 속에
참 예수가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당신의 발길이 가 닿는 세상 곳곳에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소서
당신의 선하고 용기 있는 말씀과 행동으로
세계의 평화와 정의가 한 발 전진하게 하소서.
(정연복·평신도 신학자,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