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시 모음> 정연복의 '낙엽의 말' 외 + 낙엽의 말 가을 찬바람에 한 잎 두 잎 힘없이 쓸쓸히 내가 땅으로 추락한다고 내가 덧없이 진다고 말하지 말아요. 봄 여름 가을 자그마치 세 계절 동안 눈부시도록 푸른 한 생(生) 온전히 살다 가는 나의 충만한 존재 나의 찬란한 스러짐을 두고 덧없다 슬프다 쉬이 말하지 말아요. 왔다 가는 것은 생명의 이치인 줄 알기에 이제 가벼운 맘으로 돌아가는 참인데 나 때문에 괜히 눈물짓지 말아요. + 성(聖) 낙엽 가을이 깊다 낙엽은 더욱 깊다 황홀한 봄날 불타는 여름의 푸르던 한 생(生) 고이 접고 온몸이 나래 되어 온 마음이 무(無) 되어 한마디 말없이 한치 미련도 두지 않고 훌훌 떠나는 저 비범한 낙하. 문득 나는 듣네 작고 여린 것이 툭 던지는 무언의 화두(話頭) 너는 얼마나 깊니? + 낙엽의 노래 세상의 한 모퉁이 한 점 푸른 빛으로 내 생의 세 계절 후회 없이 살다가 이제 떠나가네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가네 바람에 가벼이 날리며 명랑(明朗)의 춤추며 떠나가네. 춥고 쓸쓸한 겨울 지나 꿈결인 듯 새 봄이 오면 나 떠난 그 자리에 피어날 새로운 잎새들 생각에 잠시의 슬픔은 잊고 가슴 설레는 기쁨 속에, 영혼이 맑은 몇 사람의 아롱지는 눈물의 배웅 속에 이제 돌아가네 나의 그리운 본향으로. + 단풍 하루의 태양이 연분홍 노을로 지듯 나뭇잎의 한 생은 빛 고운 단풍으로 마감된다. 한 번 지상에 오면 또 한 번은 돌아가야 하는 어김없는 생의 법칙에 고분고분 순종하며 나뭇잎은 생을 접으면서 눈물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의(壽衣) 단풍잎을 입고서 한줄기 휙 부는 바람에 가벼이 날리는 저 눈부신 종말 저 순한 끝맺음이여! + 잎들도 흐른다 살아 있는 것들은 흐른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흐른다, 변한다 잎들도 흐른다 계절 따라 변화한다. 봄날에 그 곱던 연둣빛이더니 여름날에는 날로 짙푸르더니 구월 초이튿날 미지근한 햇살 아래 나뭇잎들 살금살금 옅은 갈색으로 물들어간다. 단풍의 전조인가 낙엽의 예고편인가 말없이 조용히 제 몸의 변해 가는 색깔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저 어른스런 잎들. + 나무 한철 눈부시게 푸르던 잎들 지극 정성으로 키운 피붙이 잎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 보내네 그리고도 나무는 울지 않네. 이별이야 가슴 저미는 일이지만 쓸쓸한 가을 지나 추운 겨울 너머 봄이 되면 다시 만날 굳센 소망 있어 나무는 제 자식들 훨훨 바람에 날려보내고도 울지를 않네 눈물 보이지 않네. + 낙엽 이야기 꽃샘추위 너머 꿈같이 기적같이 피어 연초록으로 날로 짙푸른 빛으로 세상에 눈부시던 나의 날들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시간은 흘러 이제 총총 떠나갑니다. 작고 여린 몸으로 한세월 그리 쉽지는 않았지요 햇살 받아 따습고 산들바람과 행복한 춤도 추었지요 새벽 찬이슬에 말없이 떨고 기우는 달빛 아래 외롭기도 했지요 이름도 없이, 아무런 욕심도 없이 한 생 꿈같이 흘러갔지요. 아, 짧았던 목숨의 날들 기쁘고 슬펐던 내 세 계절의 생 이 한 몸밖에 달리는 더 줄 것 없어 낮아지고 낮아지는 황금빛 카펫 하나 깔아드리니 나를 밟으며 걸어가세요 꼭꼭 밟으며 걸어가세요. 어쩌면 나의 존재와 멀지 않은 그대 안으로 눈물 감춘 그대여. + 낙엽에 대한 명상 1. 낙엽은 쓸쓸해도 울지 않는다 저 여린 듯 강한 모습. 2. 한 잎 낙엽은 작고 보잘것없다 그런데도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3. 낙엽은 어제도 오늘도 노숙(露宿)한다 그러면서도 전혀 궁색한 티를 내지 않는다. 4. 낙엽은 서로가 서로의 이불이 된다 엉성하지만 눈물겹게 따뜻한 정(情)의 홑이불. 5. 낙엽의 형체는 사라져도 추억은 남는다 나의 삶도 그럴 수 있을까? 6. 저 낙엽은 썩어 땅의 거름이 되리 나의 이 몸도 그러하리라. 7. 낙엽 함부로 밟지 말라 너도 머잖아 한 장의 낙엽인 것을.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