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랑 시 모음> 정연복의 '여보, 미안해' 외 + 여보, 미안해 너의 행복 하나 고이 지켜 주겠다고 새끼손가락 걸어 굳게 맹세했었는데 나에게 시집 와서 고생만 시킨 것 같아 여보, 미안해 너의 마음에 그늘지는 일이 없도록 늘 밝게 살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나의 지치고 약한 모습 종종 보여줘서 여보, 정말 미안해 너를 위해서라면 저 하늘의 달과 별이라도 성큼 달려가 따오겠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들꽃 한 묶음도 정성껏 안겨 주지 않아 여보, 너무 미안해 + 사랑가 당신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사랑을 합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갑니다. 나의 기쁨이며 슬픔 나의 빛이며 그림자 이 가슴 뛰게 하고 이 가슴 놀라게 하는 당신이 있어 내가 살아 있습니다. 내 눈에는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작은 당신 하지만 내겐 너무 큰 당신 그런 당신을 한평생 사랑하고 싶습니다. + 차 한 잔 가끔 아내는 내게 차 한 잔을 권한다 잠시나마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자는 뜻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차를 물 마시듯 단숨에 마셔 버린다 급할 것 하나 없는 세상살이인데 왜 나는 이리도 여유가 없을까 뜨거운 차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얘기 꽃 한 송이 피우면 우리의 사랑 더욱 깊어질 것을 머잖아 이 목숨도 싸늘한 찻잔같이 될 것을.... + 어느 날의 사랑고백 그대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큰소리를 내지는 않으리 그대를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 장담하지는 않으리 그대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어느새 스물 몇 해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 그대의 검은 머리에 흰눈이 내리네 나 이제 그대에게 하고픈 말은 그대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 그대의 배경이 되어 주리라 말없이 은은히 오직 그대 곁에 있으리 + 사랑의 꿈 죽음 너머까지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지는 않으리 우리 둘의 심장이 뛰는 그 날까지만 너는 내 가슴속 한 묶음 소박한 들꽃이면 좋으리 나는 네 가슴속 한줄기 밝은 햇살이면 좋으리 서로의 마음이 가끔은 모나고 어긋나서 짜증을 부리고 한바탕 사랑싸움을 해도 좋으리 그저 햇살 그리운 들꽃 들꽃 그리운 햇살이면 좋으리 + 사랑의 천국 며칠 전 내게 보내준 단 두 줄의 문자 메시지 "내가 천국에 갈 때까지 당신만 사랑해요." 이 황홀한 고백 한평생 가슴속에 있을 거예요. 나도 똑같이 당신께 말하겠어요 "내가 천국에 갈 때까지 당신만 사랑해요." 꿈같이 바람같이 흐른 지난 세월 가만히 뒤돌아보면 당신과 함께 한 스물 네 해 하루하루가 천국의 시간이었지요. 이제 우리의 머리에 흰 서리 솔솔 내려 지상의 날들 얼마쯤 남았을지 몰라도 우리의 사랑이 바로 우리의 빛나는 천국이고 어느새 미루나무같이 우뚝 자란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 그 천국의 더없이 소중한 보물인 것을. + 차라리 나이기를 우리가 만난 지 어느새 스물 다섯 해 이따금 싸울 때도 있지만 부부의 정 말없이 깊어지는 우리 두 사람은 아무래도 천생연분. 당신 없는 나 나 없는 당신은 몹쓸 생각이지만 무릇 생명의 주인은 바람 같은 시간 언젠가 우리 둘 지상의 인연 다할 날이 오겠지. 한날 한시에 같이 가서 함께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죽음의 길이라도 무섭지 않고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군가 먼저 떠나야 한다면 그래서 뒤에 남는 사람이 슬픔에 잠겨야 한다면 아무쪼록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가기를! 사별의 큰 슬픔에 겨운 이 마음씨 여리고 착한 당신이 아니라 나이기를! + 사랑하는 당신께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인 오늘 왜 당신 생각 물밀듯 밀려올까 아마 당신 영혼 눈같이 맑았기 때문일 거야 사람들이 입 모아 천사라 불렀던 당신이니까. 몸은 지상을 떠나고서도 늘 내 맘속 살아 있는 당신의 존재 낮이나 밤이나 내 곁에 맴도는 당신의 숨결 있어 당신 뒤에 쓸쓸히 남고서도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것. 허공에 휙 스치는 한줄기 바람 같은 이 목숨 그분께서 거둬 가시는 날 앞서거니 뒷서거니 흘러 바다에서 합하는 강물같이 잠시의 슬픈 이별 너머 영원의 따스한 입맞춤으로 우리 둘도 반갑게 다시 만나리니.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