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시 모음> 정연복의 '그리운 딸에게' 외 + 그리운 딸에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 딸을 생각하면 그 말은 거짓말이다. 눈 가까이 있는 딸은 가끔 성가시기도 하지만 눈에서 멀어진 딸은 절대적 그리움이다 눈에서 멀어지는 순간 딸은 마음속에 꽃 피어난다. 곁에 있을 때 좀더 잘해 주지 못한 걸 후회하며 지금은 곁에 없는 딸이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눈에서 멀어지면 딸은 마음으로 더욱 가까워진다. + 길 떠나는 딸에게 차곡차곡 쌓은 그리움에서 피어난 꽃 반가운 재회의 날은 꿈결같이 지나고 이제 다시 길을 떠나는 사랑하는 딸아. 만나고 또 헤어짐은 삶의 순리(純理)이리니 하늘에 구름 흐르듯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는 눈물보다 환한 웃음의 이별을 하자. 네가 발 디디는 모든 곳 또 너의 곁에 그분의 인도하심과 보살핌 늘 함께 있으리니. + 목련꽃 그늘 아래 하룻밤 자고 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봄날 아침 인사를 대신해 사진 한 장 카톡으로 보냈다 막 터지려는 흰빛 수류탄 같은 아파트 앞 목련꽃 사진. 포항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도 사진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따스한 봄 햇살 속 평화로운 캠퍼스 어딘가 만발한 수천 송이 목련꽃 아래 살짝 미소짓는 제 모습을. 목련 빛깔 니트를 걸쳐 입고 한결 예뻐 보이는 딸 목련꽃 그늘 아래 딸도 한 송이 목련꽃이다. 요즘 첫사랑에 가슴 설레는 스물 셋 꽃다운 나이 꽃처럼 밝고 착하게 잘 자란 나의 소중한 딸아 그래,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목련같이 맑고 순수한 사랑을 꽃 피우렴. + 아빠를 사랑해요 오늘은 쉰 일곱 번째 맞는 내 생일 날짜가 바뀌는 시각에 맞추어 멀리 포항에 있는 딸이 전화했다 딸은 다정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속삭이듯 말했다. '아빠 생일을 축하해요 아빠를 사랑해요 아빠가 내 아빠라는 게 너무 좋아요.' 이보다 더 귀한 생일 선물이 있을까 내게는 과분한 큰 선물이다 내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딸의 몇 마디를 잊지 못할 거다. 꿈 많은 딸에게 지금껏 잘해 준 게 없는데 그렇게 부족한 나를 좋은 아빠로 인정해 주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얼마나 착한 딸인가. 딸이 살아가는 동안 그런 아빠로 기억될 수 있도록 앞으로 더 애써야겠다 정말 좋은 아빠 되어야겠다. + 필리핀에 있는 딸에게 대학 2학년생 딸이 어학 연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오늘 새벽 멀리 필리핀으로 떠났다 한겨울인 한국을 등지고 무더운 그곳으로 꿈같이 바람같이 떠나갔다. 그리고 밤늦게 카톡으로 날아온 간결한 한마디 "아빠 사랑해요." 그래, 착하고 예쁜 딸아 정말 고맙구나 아빠도 너를 많이 사랑해. 앞으로 6주 동안 차곡차곡 그리움의 적금을 부으면 기쁜 재회의 날이 오리니 연초록 잎 돋을 봄날을 기약하며 긴긴 겨울밤 찬바람 속에서도 의연한 저 나목(裸木)같이 불쑥 치솟는 그리움 하나마다 만남을 준비하는 보물로 여기며 우리 하루하루 힘차게 살자. + 북한산 둘레길 아직은 2월 말 꽃샘추위 심술 부릴 만도 한데 오늘 따라 봄기운 완연하다 딸과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꽃 피우며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그 동안 쌓인 얘기 많았는지 딸은 종달새같이 쉴새없이 재잘거렸다. 멀리 포항에서 대학을 다녀 가끔 무척 보고 싶었던 딸이랑 함께 걸은 한 시간 남짓의 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딸이 떠나고 나면 문득 생각날 내 맘속 한 점 행복한 추억 긴 겨울 너머 봄의 발자국 소리 들리는 듯 조용히 밝고 따뜻한 길. + 출가하는 딸의 노래 당신의 품속 맴돌던 제가 이제 집을 떠납니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생명의 탯줄 스물 여덟 해 동안 정들었던 집을 떠나갑니다. 때가 되면 바람에 실려 미지의 곳으로 날아 새 생명을 꽃 피우는 민들레 홀씨같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꽃 한 송이 피우려 떠나갑니다. 한평생 목숨 바쳐 사랑할 참 좋은 사람을 만나 떠나는 제게 잠시의 슬픔 너머 힘찬 격려의 박수를 쳐주세요. 그 동안 베풀어주신 지극 정성의 그 사랑 힘입어 기대에 어긋남 없는 사랑과 평화의 가정을 이루겠습니다. 온 맘으로 감사 드려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 + 딸을 위한 기도 주님! 당신이 제 곁에 보내주신 살아 있는 보물 웃고 울며 기뻐하고 슬퍼하며 명랑하고 그늘지며 젊은 날의 가슴앓이 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딸을 위해 세 가지를 간절히 구하나이다. 믿음으로 흔들림 없게 하소서 소망으로 마음이 늘 환하게 하소서 사랑으로 많이 행복하게 하소서. + 딸의 행복을 비는 기도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릴 때부터 맘속 믿음의 싹 튼튼히 자랐어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의식이 돋보이지요 낙천적이고 쾌활한 성격이라 친구도 꿈도 많고요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물도 인정도 퍽 많아요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제 딸입니다. 주님! 제 딸은 또한 당신의 귀한 딸이오니 오직 당신의 자녀 됨에 합당한 행복을 누리게 해주세요.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김으로 뽐내는 행복이 아니라 나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서 샘솟는 창조적인 행복 남부럽지 않은 부자로 사는 데서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따뜻이 품어주는 데서 오는 행복 눈에 보이는 것들이 가져다주는 천박한 행복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을 알뜰히 가꾸는 내면의 행복을 맛보게 해주세요. 오, 주님! 당신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만한 올바른 가치와 행동 사심 없는 헌신과 봉사를 즐기는 고상한 생활과 품격에서 꽃 피는 사랑의 기쁨 가득한 그런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세요.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