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달빛아래
그립지 않은 게 무엇인가
못난 아들 때문에 홀로 계신 어머니
귀여운 손자들을 마음껏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
어릴 때부터 이어져오던 친구들
눈감으면 그려지는 정겨운 거리들
사무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한가위 달빛아래 이방인이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한가위
사랑방 주인들은
가을볕을 덮고
푸른 산맥 자락에 고즈넉이 주무시고
방방곡곡에
흩어진 손(孫)들이 모여
태생부터 배운 절을 공손히도 올린다
감나무 가지에
보름달 걸리면 주안상에 홍얼거리다
돈 안 드는 빈말로 토닥이면 된다
한가위,
세상에 이런 날도 다 있다니
참 좋은 날이다.
(최홍윤·시인)
+ 한가위 고향집에서
아가
먹거라 더 먹거라
객지 생활 눈치 밥이
살로 갔겠냐,
뼈가 됐겠냐.
아무 일도 말거라,
그냥 쉬었다 가라.
조상님이 자시면 얼마나 자시겠냐
새끼들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그저 나는 흐뭇하다.
얼굴이 웃음만 벙글어 진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와 친지, 친척 만나보고
모두가 어우러져
까르르 웃음 짓는 희망과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는
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과 인정이 샘솟아
고향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지라도
슬며시 옛 추억과 동심을 불러내어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의미 있고 소중한
팔월 한가위이었으면 합니다
(반기룡·시인, 1961-)
+ 한가위 달밤에
어머니!
앞산 마루 두둥실 달밤
땀에 저린 일상 뒤안에 내려놓고
맨드라미 고운 잎
송당송당 썰어 넣어
둥근 달로 지진 전
한사코 입에 넣어 주셨지요
곱기도 하다며 보라시던 보름달
이 밤엔 어머니 얼굴로 솟아
솟구치는 그리움에
호올로 바라봅니다
어머니!
자식 앞에 보이지 않으려 했던
뺨 위 두 줄기 눈물
달빛에 너무도 선연했습니다
그 의미 지금도 알 수 없으나
이 자식 가슴속에
살아서는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흐릅니다.
(강대실·시인, 1950-)
+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떴다
어린 시절로 돌아온 듯 뒷동산에 올라
'동무들아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외쳤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다
밤이 흥청 깨어지도록 즐겁게 뛰놀던 기억의 자리에
낯선 무덤들이 여럿 웅크리고 있다
꽉 찬 보름달 텅 빈 뒷동산
내려오는 길목 늘어선 빈집들에는
어둠만 무겁게 도사리고 있을 뿐
아무도 살지 않았다
추억은 오래 전 뿔뿔이 쫓겨갔다
쫓겨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김선태·시인, 1960-)
+ 한가위에 드리는 기도
잠시 오해했다면 고백하고
한동안 미워했다면 뉘우치고
황금빛 들녘의 넉넉한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는 화해의 걸음이게 하소서
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어머니처럼 포근한 보름달, 그 넓음으로
작은 것의 소중함의 알게 하시고
큰 것일수록 의연할 수 있게 하소서
잘 익은 한가위처럼
잘 다려진 숙성된 빛으로
나를 발효시키는 성숙함이게 하소서
대낮같이 비추는 천지의 보름달, 그 깊음으로
화안의 친절한 미소로
일상의 기쁨을 이웃과 나눌 수 있게 하시고
춥고 낮은 곳일수록
베풀 수 있는 따뜻한 관심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포용의 그릇이 클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가다듬는 기도
소박한 꿈을 꾸는 내일의 희망이게 하소서
고운 인연들에 감사하며
함께 기대며 살아가는 둥근 세상이게 하소서
언제나 웃기만 하는 보름달,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