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동물보다
늘 한 자리만을 지키고 있는
꽃과 나무들이
자연의 여백과 더불어
아름다움이 더하다
자연과 멀어져가는
인간은 온몸에
돈과 권력으로 치장하여 보지만
개보다 참될 수가 없고
꽃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다
(박만엽·시인, 경북 포항 출생)
+ 아름다운 사람
바람이 부는 날은
별들은 갈대로 쓸리고 있었다.
강가에서 머리카락을 날리는
아름다운 사람아.
달이 높이 뜬 날은
별들은 손을 호호 불고 있었다.
얼어붙은 강을 보며 고개 숙인
아름다운 사람아.
(박재삼·시인, 1933-1997)
+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얼굴 위에
있지 아니하고
마음 안에 있는
한 빛이어라
(칼릴 지브란·레바논 출생 소설가, 1883-1931)
+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나 모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여
그것을 찾으며 숭배하느니
그보다 더 찬미할 것이 무엇이랴.
사람은 바쁜 나날 속에서도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영예로운 것,
나 또한 무엇인가를 창조하여
아름다움의 창조를 즐기려 한다.
그 아름다움이 비록 내일 오게 되어
기억에만 남아 있는
한낱 꿈속의 빈말 같다고 해도.
(로버트 브리지스·영국 시인, 1844-1930)
+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사라져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가 돌아가는 하늘이
회중전등처럼 내 발 밑을 비춘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작아서 아름답다
(김종해·시인, 1941-)
+ 아름다움이 있는 곳
내려오려고만 하지 마라.
폭포야.
하늘이 참 아름답지 않니.
올라가려고만 하지 마라.
분수야.
꽃이 참 아름답지 않니.
(오순택·시인, 1942-)
+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은 사라져
눈물이 됩니다
이슬이 그렇고
노을이 그렇고
새들의 노래가 그렇습니다
달이 그렇고
별이 그렇고
우리들의 꿈이 그렇습니다
사라져선 다시 눈 속에 고여
끝없이 솟아나는
눈물이 됩니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눈물이 되어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공재동·시인, 1949-)
+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모든 들풀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사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람도 없는 어느 한여름 날,
하늘을 가리우는 숲 그늘에 앉아 보라
누구든지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와 함께
무수한 초록 잎들이 쉬지 않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오직 하나,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양성우·시인, 1943-)
+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달걀이 아직 따뜻할 동안만이라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는 세상엔 때로 살구꽃 같은 만남도 있고
단풍잎 같은 이별도 있다
지붕이 기다린 만큼 너는 기다려 보았느냐
사람 하나 죽으면 하늘에 별 하나 더 뜬다고 믿는 사람들의 동네에
나는 새로 사온 호미로 박꽃 한 포기 심겠다
사람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내 아는 사람이여
햇볕이 데워놓은 이 세상에
하루만이라도 더 아름답게 머물다 가라
(이기철·시인, 1943-)
+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서산에 걸린 노을을 보고
외로움을 느낄 줄 알기 때문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반짝이는 봄날 햇님의 눈부신 웃음 아래
언 땅을 뚫고 나온 초록에서
하얀 겨울을 읽을 줄 알기 때문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하늘을 안을 수 없어 파도치며 울음 짓는
바다의 슬픔을 알기 때문
당신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내 눈빛에서 사랑의 천국을 볼 수 있기 때문.
(홍경임·시인, 경기도 안성 출생)
+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 꽃 한 송이
방싯 꽂아 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장이 목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
우리 눈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곽재구·시인, 1954-)
+ 하얀 기저귀
오랫동안 총각으로 지낸
소아마비 영수 오빠한테 시집 온 벙어리 언니가
첫딸을 낳았다.
이웃집 할머니가 아기를 받는 사이
몇 년만에 울려 퍼지는 아기 울음소리를
마당에 놀던 닭들도 고개를 돌려 가며
듣더라 했다.
학교 길에 듣는 아기 울음소리
언제 들어도 보드랍다.
언제쯤 아이 안아 줄 수 있을까.
울타리에 널려 햇볕을 받고 있는
바람에 마르고 있는
하얀 기저귀들을 두고
선생님은 천연기념물 숲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
(임길택·시인, 1952-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