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에 조용히 올라오는 나뭇잎의 초록
내 마음의 초록,
그래서 기도도 내내 초록빛입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초록 세상
푸른 연잎 위에
청개구리 한 마리
물가
매실나무엔
청매실이 올망졸망
싱싱한 푸른 잎의
인동초
꿀꽃 향기 상큼하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 세상
푸른 오월
내 마음도 푸르다
(이문조·시인)
+ 초록비
오늘은 비가 내린다.
사랑새가
살고 있는 마을에
비가 내린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사랑새가
살고 있는 마을에
초록비 귀한
단비가
내린다.
(심홍섭·시인, 1960-)
+ 초록의 힘
낙하의 곧고 빠른 힘은 나무의 직립 때문이다
비라고 부르면 입 안 가득 고이는 빗물
나무라고 부르면 환히 귀가 트이는 나무들
구를 때마다 지구를 뭉치는 힘은 초록으로 솟구친다
나무의 언어 속에 들어가면
사람의 언어는 사라지고 나무의 언어만 남는다
발이 시려도 신 신지 않은 나무
오래 비장해 두었던 초록의 힘
낮은 데서 신생을 준비하는 나무들
그 잎을 적시는 곧고 우아한 빗줄기들
비 그치면 흰 타월로 걸릴 햇볕 폭포들
(이기철·시인, 1943-)
+ 초록 엽서
연초록 그늘 밑에 앉아
초록으로 색을 바꾸고 있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이렇게 적는다
어제는 울적했다고
어제는 고달팠다고
이렇게 적는다
오늘은 마른 풀 사이로
삐죽이 고개 내민
소리쟁이가 눈부신 하루라서
고맙고도 눈물난다고
이렇게 적는다
(도광의·시인, 1940-)
+ 초록빛 입맞춤
반갑다는 건 덥석 손을 맞잡는 것
얼굴을 비비고 싶은 것
기쁨이 찰랑찰랑 발목을 적시는 것
깊은 산 속에 드문드문 서 있는 토종 소나무
거기 매달린 단단하고 야무진 솔방울들
진하지 않은 향긋하고 포근한 냄새
계곡을 휘돌아온 물소리가
숫용추 치마바위 지나서
유난히 아담하고 청정한 적송 한 그루
내 가슴에 쏟아 붓는 향긋한 초록빛 입맞춤
(이섬·여류 시인, 대전 거주)
+ 초록별
키 큰 오동나무와 감나무 사이
비 개어 맑은 하늘
밤 되자 초록별 두엇
호롱불 들고 나왔다
저녁밥조차 얻어먹지 못해
배고픈 별들일까?
사무치게 보고픈 사람
다시 그리워 나온 별들일까?
너울거리는 너른
오동나무와 감나무 이파리 사이
뀅한 눈빛 쏟아질 듯
그렁그렁한 눈물
오늘도 누군가 지상의 한 사람
하늘로 올라가 별들의
등불에 기름을 보태고 있나보다.
(나태주·시인, 1945-)
+ 초록 비
밤새
초록 비는
버드나무 가지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참새가 잠잘 때도
구름이 잠잘 때도
가만가만
초록 비는 밤에만 내린다.
누가 볼까 두근두근 가슴 졸이며
앙상한 가지에, 뜨거운 대지의 심장에도
남몰래
초록 비는 밤에만 내린다.
서러운 눈물
슬픈 기억 모두 잊고서
사뿐사뿐
초록 비가 내린다.
뒤뜰의 사철나무 가지 위에도
앞산의 아카시아 나무 가지 위에도
남몰래
초록 비는 밤에만 내린다.
그대 마음에 내리는 초록 비도
나의 마음에 쌓이는 초록 비도
내려라 내려라
가득가득 내려라.
(윤용기·시인,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