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나는 보았습니다.
파도들이 달려올 때는 옆 파도와 단단히
어깨동무한다는 것을
손에 쥔 하얀 거품이
모래밭을 덮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온몸을 하얀 거품 손에 감춘다는 것을
파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강은교·시인, 1945-)
+ 파도를 보며
파도를 본다
도도한 목숨이 추는
어지러운 춤이여
울고 사랑하고 불타오르고 한탄하는
아아 인생은 위대한 예술
그 중에도 장엄한
서사시의 한 대목
바라건대 나는
그 어느 절정에서
까물치듯 죽어져라 죽어지기를…
(유안진·시인, 1941-)
+ 파도
파도여,
파도여!
일고 일다 부서질
오~,
넌,
하얀
내 그리움.
(최영희 시인)
+ 해변에서 부르는 파도의 노래
바다!
억겁(億劫)을 두고
오늘도 갈매기와 더불어 늙지 않는 너의 청춘,
말못할 가슴속 신음 같은
파도 소리
한시도 쉴 새 없이 처밀고 처가는
해식사(海蝕史).
바다의 꿈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인가
영겁을 두고 신념의 투쟁인가
바다는 완성한다!
욕망이 침묵하는 그 속에서
황혼이 깃들어
저녁 노을의 빛·빛·빛
변화가 파도에 번질거린다.
(한하운·시인, 1920-1975)
+ 파도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거대한 바위섬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던 파도는
산산이 부서지며
게거품을 물고 까무러쳤다가
다시 독(毒)을 품고 달려든다.
그러다가 시퍼렇게
그러다가 시퍼렇게 가슴에 멍만 들어
페리호 뱃전에 머리를 박고
두 발을 구르며 떼를 쓰다
눈물도 못 흘린 채 스러져 버린다.
누구의 채찍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목필균·시인)
+ 파도
바다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파도가 밀려오고
또 밀려오면서
수없이 하고픈 말들이
많고 많은 것 같은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외치고 싶어하는데
철석 철석대며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가슴에 응어리가 져서
하얀 거품을 내뿜고
울먹이는 것만 같은데
파도는 왜
속시원하게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파도
파도는
바다를 부수고 싶은 마음으로
주먹을 내밀어
제 머리를 들이받고
거품을 내뱉으며
사상과 이념을 논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이내 바다를 긍정하여
바다가 되고 만다
저것 보라
미지의 깊이에서 쌓아 올린
성벽을 허물기 위해
파도와 파도가 머리를 들이받고
순교하는
순수의 신앙